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엘 초르크 (문단 편집)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단장 === BVB에서만 572경기를 뛴 초르크는 은퇴 후 소속팀이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떠난 [[오트마어 히츠펠트]]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단장직을 곧바로 역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평생 축구만 해왔던 초르크에게 경영은 문외한이였다. 선수 생활 동안 그는 도르트문트 대학에서 4학기 동안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이 학위는 중단되었다. 때문에 처음 몇 년 동안은 초심자로서 맨땅에 헤딩하는식으로 단장직을 수행해야했다. 불과 두 달 전에 초르크와 함께 뛰었고, 타이틀을 축하하러 저녁에 나가서 같이 술마셨던 선수들을 이제는 보드진의 입장으로 상대해야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르크는 미하엘 마이어 부회장 밑에서 천천히 경영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도르트문트에게 부진의 시기가 닥쳐왔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우베 노이하우스와 마이클 스키베, 초르크.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e600 0%, #ffe600)" {{{#!html 경기를 지켜보는 우베 노이하우스,}}} [[미하엘 스키베|{{{#000 스키베,}}}]] {{{#000 초르크}}}}}}''' || 말이 스포츠 디렉터지 사실상 구단 경영은 게르트 니바움(Gerd Niebaum)과 미하엘 마이어(Michael Meier)에 의해 굴러갔고, 경력이 일천한 생신입과 다름없는 초르크는 실권이 없었다. 보드진은 [[네비오 스칼라]]를 경질시키고 1부 리그 경험이 전무한데다 나이가 33살에 불과한 2군 감독인 [[미하엘 스키베]]를 1군 감독으로 승격시켰고, 그를 보좌할 수석코치고 우베 노이하우스를 데려왔다. 세간의 우려가 있었지만 1999-2000 시즌 스키베 감독은 팀을 무사히 리그 4위에 안착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시즌이였다. 2000-01 시즌이 시작되고 클럽의 계속된 성공에 고무된 클럽 운영진들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는데, 바로 독일 축구 클럽들 가운데 최초로 주식 시장[* DAX(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시도한 것이다. 보다 투명한 클럽 운영을 위한 도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도전은 또 한 번 '''구단 경영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무리한 주식 상장으로 구단 재정에 또 한 번 흑풍이 불어 닥친 것이다. 성적이라도 잘 나왔으면 모를까 스키베의 도르트문트는 성적이 꼬라박다 못해 강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결국 스키베를 경질하고 그 감독 대행도 부진을 막지못해서 경질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클럽 이사진들은 [[우도 라텍]]을 급히 데려오고 [[마티아스 자머]]는 은퇴를 선언한 후 바로 라텍을 보조해주는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나마 강등은 면한 11위로 시즌을 마쳤고, 마티아스 자머가 감독이 된 2000-01 시즌부터 초르크는 [[토마시 로시츠키]], [[크리스토프 메첼더]]를 영입하여 자머를 지원하였고 이에 성적이 반등하여 리그 4위로 챔스 진출에 성공하였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1-02 시즌 도르트문트의 리그 우승을 다시 이끈 초르크.jpg|width=100%]][[파일:초르크와 마티아스 자머.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e600 0%, #ffe600)" {{{#!html 초르크와}}} [[마티아스 자머|{{{#000 자머}}}]]}}}''' || 이후 2001-02 시즌에 전 동료였던 초르크와 이번에 경영인과 감독의 입장으로서 손잡은 마티아스 자머는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다시 [[분데스리가]] 정상의 자리를 되찾았고, [[UEFA 유로파 리그|UEFA컵]]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3:2로 패하여 우승에 실패했다. 그 다음 시즌에도 최종전을 치르기 전까지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을 얻을 수 있는 2위를 지킨 상태라서 최종전 상대인 꼴찌 [[FC 에네르기 코트부스]]와의 홈경기에 이변만 없다면 도르트문트가 그대로 2위를 차지하는 것이 유력했으나 예상외로 경기 종반에 동점골을 헌납하며 1:1로 비기고 말았고 2위 자리를 [[펠릭스 마가트|마가트]]의 유치원 [[VfB 슈투트가르트]]에 내주며 챔피언스리그 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문제는 2003-04 시즌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 KV]]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중요한 수입원이었던 챔피언스 리그 수입이 끊겼고, 설상가상으로 독일 최대의 미디어 그룹이던 키르히 그룹이 파산하여 TV 중계권료도 끊기고 만다. 주식 상장으로 번 돈은 챔피언스 리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선수 영입하는 데 쓴 상태에서 기껏 영입한 주전 선수들이 줄부상을 끊었으니, 미래는 불보듯 뻔했다. 주식 상장을 위한 무리한 투자는 커다란 적자라는 차가운 현실로 이어졌고, 이는 1990년대 팀의 돌풍을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다시 이탈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시즌 초반 주축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신음하며 제대로 베스트 라인업을 짜기 어려워 리저브팀과 유소년팀에서 선수를 끌어올려야 했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가운데에서도 분전하여 리그 6위로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사이에서도 자머는 대리석과 같다며 경직된 전술구사에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도 실패하였기 때문에 여론은 자머에게 좋은 상황만은 아니었다. 결국 2003-04 시즌을 끝으로 자머는 도르트문트 감독직에서 경질된다. 자머의 후임으로 2년 전 UEFA컵에서 준우승의 쓴맛을 안겼던 [[베르트 판마르베이크]]가 부임하였다. 초르크는 2003년 이후의 재정 위기속에서 한 시즌 반 안에 구단의 예산을 반으로 줄이는 과제를 했다. 경기장은 여전히 꽉 차 있었고, 외부 사람들에게는 도르트문트가 아직은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을것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에게는 더 이상 최고 수준에서 충분히 경쟁할 좋은 선수들이 없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경영난을 겪은바 있는 도르트문트는 꽤 현명한 대처를 할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번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더했기 때문이다. 하향 나선은 점점 더 빠르게 회전했고 2004년 10월까지 클럽은 6,770만 유로의 손실을 발표했고 1억 1,880만 유로의 부채를 보고했다. 게르트 니움바움은 회장직에서 쫓겨났다. 이런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2005년에는 다시 한 번 '''구단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FC 바이에른 뮌헨]]으로부터 200만 유로를 빌리기도 했다.] 베스트팔렌슈타디온이란 멋드러진 홈 경기장의 이름이 지역 보험 회사의 이름을 딴 [[지그날 이두나 파크]]로 바뀐 것도 막막한 구단의 경영난을 타파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클럽은 2005년 파산위기를 맞이하고 11유로에 달했던 클럽의 주식 가치는 80% 가까이 폭락했고, 선수 연봉도 전원 20% 삭감해야 했다. 이것에 더해 재정난으로 2006년 팀내 최고 유망주 [[다비드 오동코어]]를 [[레알 베티스]]로, 핵심 선수인 [[토마시 로시츠키]]를 [[아스날 FC]]로 이적시켜야 했고 주포인 [[얀 콜레르]]를 [[AS 모나코 FC]]로 이적시켰으며, 2007년에는 핵심수비수 [[크리스토프 메첼더]]를 이적료 없이 레알 마드리드로 넘겨주었다. 대신 초르크는 어려운 재정속에서도 [[넬손 발데스]]라던가, [[알렉산더 프라이]]같은 나름 유명한 선수들도 영입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시츠키를 아스널로 보낸것을 비롯하여 팀의 주 득점원인 [[믈라덴 페트리치]]를 [[함부르크 SV]]로 이적시키고 [[모하메드 지단]]을 영입하는 스왑딜 때문에 초르크는 팬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스요아힘 바츠케]]의 비호 아래 초르크는 영입 방침을 지킬 수 있었다. 이후 한동안 도르트문트에는 [[꿈도 희망도 없어|꿈도 희망도 없어 보이는]] 시즌의 연속이었다. 재정위기 속에서 2004-05시즌과 2005-06시즌 연속 7위를 기록하더니, 2006-07시즌에는 심지어 '''2부 리그로 추락할 위기'''[*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이 당초 시즌 후 떠날 예정이었고 메첼더와 켈 등 선수들이 부상으로 아웃된 상황에서도 5승7무5패 9위라는 중위권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질되었다. 후임 감독은 위르겐 뢰버였는데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에서 바이에른을 3:2로 잡으며 쾌조의 스타트를 기록하는 듯 했으나 이후 7경기에서 6패를 당하며 17위까지 떨어지자 경질되었고, 얼마 전까지 함부르크의 감독이었던 토마스 돌이 강등위기의 팀을 수습하며 9위로 마감했다. 33라운드 홈에서 열린 샬케와의 더비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라이벌의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가로막았다.]에 빠지기도 했으며, [[미하엘 루메니게]]를 선임하려는 시도때문에 초르크는 도르트문트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하였다. 2007-08시즌에도 13위까지 순위가 떨어졌지만, [[누리 샤힌]]이라는 대형 유망주를 지켜낸 초르크는 올라설 발판을 마련 할 수 있었다. 지금을 보면, 재정 문제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과거만큼 심각하지 않았던 많은 다른 클럽들의 운명을 고려할 때, 그 이후로 단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초르크가 해낸 도르트문트에서의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2004년부터 2008년은 초르크의 도르트문트 단장 생활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초르크와 클롭.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e600 0%, #ffe600)" {{{#!html 초르크와}}} [[위르겐 클롭|{{{#000 위르겐 클롭}}}]]}}}''' || 하지만 도르트문트의 재정 붕괴는 지속되지 않았고 다행히 위기를 피할수 있었다. 여전하게도 도르트문트 팬들은 열렬한 성원을 꾸준히 보내주었고 구단 역시 [[http://ynwalone.egloos.com/5463871|뼈를 깎는 재정 개선 노력]]을 진행했다.[* 재정 개선 + 꾸준한 성적으로 인해 2013년 현재 도르트문트의 수입은 세계 축구 구단중 10위이며(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 기준) 주급제한을 풀고 유스에 대대적인 투자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에 올라왔다. 이렇게 부활한 건 바츠케 회장이 돈을 잘 안 쓰고 쓸 곳에만 쓰며 아낀 것이 크다. 여담으로 2014-15시즌이 시작되기 전 챔스 진출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챔스 보험을 들어놨다고 한다. 여기서도 그의 운영력과 예지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런 노력이 계속되고 있던 와중, 재도약의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도르트문트는 2007-08시즌 [[DFB-포칼]] 결승전에서 [[FC 바이에른 뮌헨]]과 격돌했는데,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바이에른 뮌헨이 이미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한 상태라 운 좋게 [[UEFA 유로파 리그|UEFA컵]] 출전권을 따냈던 것이다. 오랜만에 UEFA컵 출전권을 손에 쥔 도르트문트는 회생의 실마리를 잡았고, 2008-09시즌부터 초르크는 40세의 젊은 [[위르겐 클롭]] 감독을 선임하여 재기를 노렸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마이스터샬레와 포칼 우승 트로피를 든 초르크와 클롭과 바츠케.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e600 0%, #ffe600)" {{{#!html 초르크와}}} [[위르겐 클롭|{{{#000 클롭,}}}]] [[한스요아힘 바츠케|{{{#000 바츠케}}}]]}}}''' || [[위르겐 클롭]] 부임 후 초르크는 [[네벤 수보티치]], [[마츠 후멜스]], [[우카시 피슈체크]], [[카가와 신지]], [[루카스 바리오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영입에 성공하였고, 초르크의 지원을 받은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2010-11 시즌, 2011-12 시즌 두 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거두는 등 구단의 또 다른 전성기에 일조했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안경쓴 초르크.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e600 0%, #ffe600)" {{{#!html 2013년 챔스 결승 패한 다음날의 초르크}}}}}}''' || 뭐니뭐니해도 초르크의 단장 인생중 가장 의미있던 일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UEFA 챔피언스 리그/2012-13 시즌/결승전|2012-13 시즌 챔스 결승전]]에 진출한 것이다. 1997년 우승 이후로 다시 나락을 가던 팀이 마침내 명가 부활의 신호탄을 올린것으로, 분데스리가의 거함 [[FC 바이에른 뮌헨]]과 [[빅 이어]]를 놓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승부를 가리게 됨으로써 마침내 도르트문트의 자존심도 높아졌다.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4번을 겨뤄 2승 1무 1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냈고 여기서 바이에른 뮌헨까지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통산 2번째 우승이 될 수 있었으나 더이상은 역부족이었는지 결국 뮌헨에게 1-2로 아쉽게 지며 우승의 꿈을 놓치게 되었다. 뮌헨이 트레블을 하게 되었고 도르트문트는 무관에 그치고 말았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다는것은 초르크의 영입들이 성공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기에 아쉽지만은 않은 시즌이었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단장 초르크.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e600 0%, #ffe600)" {{{#!html 2016-17 시즌 초르크}}}}}}''' || 그리고 2018년 여름 [[토마스 딜레이니]], [[악셀 비첼]], [[압두 디알로]], [[아슈라프 하키미]], [[파코 알카세르]]를 영입하고 2019-20 시즌엔 [[니코 슐츠]], [[토르강 아자르]], [[율리안 브란트]] 등 퀄리티 높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19/20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단 3일만에 슐츠와 아자르, 브란트 영입 오피셜을 띄우면서 공격적인 영입으로 주목을 받았다. 2020년 여름, [[제이든 산초]]에게 오퍼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협상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회장 [[에드 우드워드]]에 비해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초르크는 산초의 이적료로 120m 유로를 설정하고 맨유에게 8월 10일까지 이 조건에 합의해야만 산초를 보내주겠다고 했으나, 맨유는 산초의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것으로 예상하고 도르트문트에서 제시한 데드라인이 임박할 때까지 도르트문트가 요구하는 조건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초르크는 기존에 언급한 데드라인인 8월 10일까지 맨유가 비드를 넣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https://www.kicker.de/781514/artikel/bvb_verlaengerte_sanchos_vertrag_im_vorjahr_heimlich_bis_2023|인터뷰]]를 통해 '''사실 지난 여름에 산초의 연봉을 인상하며 계약 기간을 2023년까지 늘려서 재계약했다'''고 언급했다. 산초를 지켜냄으로서 초르크는 도르트문트 팬 모두한테 더더욱 찬양을 받고있다. 그런데, 산초의 폼이 이적 불발로 인한 멘탈 관리 실패와 [[뫼니에]]의 눈이 썩는 실력으로 나락을 가며, 맨유한테 사기칠 기회 놓치고 몸값이나 떨구게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중... 계약 기간이 2년 남는 다음 여름에도 €120M을 고수(...)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결국 2021년 7월에 맨유로 €85+10m 에 이적했다.] 한편 키커, 루어 나흐리히텐 등 독일의 언론에서 초르크가 2022년에 단장직을 사임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https://www.kicker.de/779725/artikel/zorc_nachfolge_ab_2022_kehl_als_sportdirektor_in_spe|키커지 기사]] 본인이 일선에서 물러나 휴식을 원한다고 했으며, 후임 단장으로는 현재 1군 선수단 고문직을 역임 중인 [[제바스티안 켈]]이 유력하다. 원래대로라면 20/21 시즌이 끝난 후 2021년 여름에 사임하기로 했으나 구단 내부 사정으로 인해 사임이 1년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1년 6월 28일, [[제바스티안 켈]]이 2022년 7월부터 2025년 6월 30일까지 구단의 단장직을 승계한다는 계약에 서명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따라서 초르크는 2022년 6월까지 단장직을 유지했고, 7월 1일부로 켈이 단장직을 승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